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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을 드리우고 정사政事를 듣다 - 수렴청정(垂簾聽政)

2017-10-19 02:10 2,768


발을 드리우고 정사政事를 듣다
- 수렴청정垂簾聽政


지난 2016년 하반기를 장식한 최대의 화제어를 꼽는다면 ‘국정농단國政壟斷’, ‘비선실세秘線實勢’, ‘문고리 3인방’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외에도 눈에 띄는 것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수렴청정垂簾聽政’이다. 수렴청정은 문자 그대로 ‘발을 드리우고 그 뒤에서 정사를 듣는다’는 것으로,1) 조선시대 왕이 어린 나이에 즉위하였을 경우 왕실의 가장 어른인 왕대비王大妃(살아있는, 선왕의 비)나 대왕대비大王大妃(살아 있는 전전 임금의 비, 주로 왕의 할머니)가 왕과 함께 정치에 참여하였던 제도를 말한다. 「댄디 한국사」의 첫 주제는 바로 수렴청정이다.

서울 노원구 공릉동에는 조선 제11대 왕 중종中宗(재위 1506~1544)의 두 번째 계비인 문정왕후 윤씨文定王后 尹氏의 무덤 태릉泰陵이 있다. 근처에 위치한 태릉선수촌의 이름이 여기에서 유래하였다. 태릉은 합장묘가 아닌 왕비의 단릉端陵임에도 상당한 위용을 자랑한다. 묻힌 이의 살아생전 위상을 가늠할 수 있는 부분이라 하겠다. 문정왕후는 제13대 왕 명종明宗(재위 1545~1567)의 모후로, 12살 어린 나이에 즉위한 명종을 대신하여 수렴청정을 실시하였다. 그녀는 무려 9년 동안 수렴청정을 하였으며, 조선의 역사상 수렴청정을 행한 왕비들 중 단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인물로 거론된다. 수렴청정의 모양새를 비롯한 여러 제도적인 요소들이 갖추어진 것도 문정왕후 때부터다.2)


임금의 나이가 이미 장성하여 대비가 비로소 정권을 돌려주었다. (중략) 이로써 늘 문정왕후에게 거슬렸으므로 왕후는 갑자기 임금을 불러들여, ‘왜 무엇무엇은 행하지 않는 것이냐?’고 따지면 임금은 순한 모습으로 그것의 합당한 여부를 말하였다. 문정왕후는 버럭 화를 내며, ‘네가 임금이 된 것은 모두 우리 오라버니와 나의 힘이다’라고 하였다. 어떤 때는 때리기까지 하여 임금의 얼굴에 기운이 없어지고 눈물 자국까지 보일 때가 있었다.3)


1) 드리울 수(垂), 발 렴(簾), 들을 청(聽), 정사 정(政)
2) 林惠蓮, 2007, 「朝鮮時代 垂簾聽政의 정비과정」 『朝鮮時代史學報』 27, 48쪽.
3) 『練藜室記述』 卷10, 「明宗朝故事本末」.

위 내용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긍익李肯翊이 지은 『연려실기술練藜室記述』의 기록으로 그녀의 위세가 어떠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문정왕후의 막강한 권력 아래에서 제도적으로 정착된 수렴청정의 흔적은 고대의 삼국시대부터 찾을 수 있다.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역사서 『삼국사기三國史記』의 기록을 보면 고구려 태조왕太祖王(재위 53~146)과 신라 진흥왕眞興王(재위 540~576)의 경우 7살의 나이에 즉위하여 모후인 태후가 섭정을 하였고,4) 신라 혜공왕惠恭王(재위 765~780)의 경우 8살에 즉위하였기에 태후가 섭정을 하였다는 기록이 보인다.5)

4) 『三國史記』 卷15, 「高句麗本紀」 第3, 太祖大王.
5) 『三國史記』 卷9, 「新羅本紀」 第9, 惠恭王.

이때까지의 섭정이 단순히 왕의 어머니가 잠시 정사에 참여하던 비상체제로 기능하였다면, 조선에서는 그것이 제도적으로 정착되었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라 할 수 있다. 앞선 시대와 같이 어린 왕이 스스로 정치를 행할 수 있을 때까지 국정에 참여한다는 점은 동일하지만, 조선시대에는 왕의 모후가 아닌 왕실의 가장 어른인 왕대비나 대왕대비에게 그 역할이 주어졌다. 조선시대에는 앞서 언급한 문정왕후를 비롯하여 8번의 수렴청정이 있었다. 특히 조선 후기 순조부터 헌종, 철종에 이르는 60년간의 시기에 행해진 잦은 수렴청정은 왕의 외척들이 전횡을 일삼은 세도정치기로 조선을 퇴보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2016년의 수렴청정은 지난 역사 속의 그것과 확연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본래 섭정 혹은 수렴청정을 행한 이유는 의사결정이 어려운 ‘어린 왕’을 위해서였다. 그러나 지난 시간 우리의 지도자는 이순耳順의 나이가 지났음에도 여전히 자신의 판단만으로 움직이기 보다는 누군가의 결정에 오랜 시간 의존해 왔다는 것에 우리 국민 모두 자괴감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왕조시대에 존재하던 ‘수렴청정’이 변질된 모습으로 현대에 다시 나타난 것이다.

2016년 10월말 북한의 노동신문은 당시 우리나라의 사태를 두고 현대판 수렴청정이라 비난하는 기사를 실었다. 매번 터무니없다고 코웃음 치며 반응하던 우리였지만 이번만큼은 그럴 수 없어 부끄럽지 않을 수 없다. 국민 모두가 전 세계적인 조롱거리로 전락한 상황에서 새해를 맞이하였다. ‘대한민국호’는 예정보다 일찍 새로운 선장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할 상황에 놓여 있다. 우리 모두가 후회 없는 선택을 통해 지난해의 아픔을 극복해 나갈 수 있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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