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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디한국사] 한국사 속 '갑질' 일람

2018-07-03 13:55 조회수303

한국사 속 ‘갑질’ 일람

소위 ‘가진 자’들의 ‘갑질’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갑질’이란 통상적으로 계약서상의 계약 당사자를 지칭하는 용어 중 상대적으로 우위에 위치하는 갑甲에 좋지 않은 행위를 비하하는 뜻의 접미사 ‘-질’을 붙여 만든 신조어다. 자신의 우월한 지위를 이용하여 이해당사자들에게 제멋대로 굴거나, 부당한 요구·처우 등을 하는 행위를 말한다. 사회적으로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갑질이 상대를 향한 인격 모독에서 그치지 않고 갖은 유형의 폭력으로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017년 ‘공관병 갑질’ 사건이 터졌을 당시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부처 차원의 갑질 문화 점검을 지시한 바 있으며, 올해 4월 참석한 제2차 반부패정책협의회에서 “갑질 문화는 국민의 삶과 자존심을 무너뜨리는 불공정 적폐”라고 지적하였다. 대통령이 공식 석상에서 여러 차례 언급할 만큼 대한민국에 만연한 갑질의 사례는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어렵다. 표면적으로 모두가 평등한 사회를 추구하는 현대사회의 모습이 이럴진대 철저한 계급사회였던 전근대에서 갑의 횡포는 말할 것도 없었다.

고구려에는 광개토대왕廣開土大王(고구려 제19대 왕, 재위 391~413) 이전에 적극적인 대외팽창정책을 펼쳐 큰 업적을 이룬 왕이 있었으니 바로 제15대 미천왕美川王(재위 300~331)이다. 그는 중국의 진晉나라가 팔왕의 난(八王之亂)을 시작으로 극심한 혼란기에 접어든 틈을 놓치지 않고, 고조선의 고토를 회복하는 큰 업적을 이루었다.

즉위 전 미천왕 을불乙弗(미천왕의 이름)은 아버지가 큰아버지 봉상왕烽上王(고구려 제14대 왕, 재위 292~300)에게 반역의 의심을 받아 죽임을 당하자 궁궐을 나와 피신하였는데, 이때 갑질로 고역을 겪은 일이 있다. 수실촌이라는 곳에 숨어 살며 음모陰牟라는 이의 집에서 품팔이를 할 당시 고용주였던 음모는 을불에게 밤에는 집 옆 연못의 개구리가 울지 못하게끔 돌을 던지라 시켰으며, 낮에는 땔감을 해오도록 독촉하여 을불이 잠시도 쉬지 못하게 하였다.고구려판 오너의 갑질+열정페이를 보는 듯하다.

고려시대에는 갑질로 인해 나라의 집권 계층이 아예 물갈이 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성종成宗(고려 제6대 왕, 재위 981~997) 이후 유교를 국가통치이념으로 채택함으로써 고려는 문치文治를 지향하였고, 자연스레 고려의 무신武臣은 문신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대우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전쟁 시 총사령관 자리에도 무신이 아닌 문신이 임명되었는데, 귀주대첩의 강감찬姜邯贊, 별무반을 이끌고 여진을 정벌한 윤관尹瓘등도 모두 문신이었다.

의종毅宗(고려 제18대 왕, 재위 1146~1170)때에 이르러 폭발 일보직전의 무신들에게 기름을 끼얹는 문신의 갑질이 연이어 터지고 말았다. 문벌귀족인 김부식金富軾(『삼국사기』의 그 김부식이다)의 아들 김돈중金敦中이 자신의 배경만을 믿고 장군 정중부鄭仲夫의 수염을 태워 희롱하는가 하면 젊은 문신 한뢰韓賴가 노쇠한 장군 이소응李紹膺의 뺨을 때리고 조롱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정중부 등의 무신은 한뢰가 품계가 한참 높은 이소응에게 한 짓을 용납할 수 없다며 의종에게 항의하였지만 의종은 한뢰를 감싸며 일을 유야무야 끝내버렸고, 더 이상 참지 못한 무신들은 정중부를 필두로 쿠데타를 일으켜 문신들을 닥치는 대로 죽인 뒤, 왕까지 갈아치워 버렸다. 김돈중도 이때 죽임을 당했으며 그의 아버지 김부식은 부관참시剖棺斬屍(무덤을 파고 관을 꺼내어 시신을 베거나 목을 잘라 거리에 내거는 형벌)를 당했다. 이후 고려는 100여 년 동안 무신들이 정권을 휘두른 무신집권기가 이어지게 되었다.

조선 후기에는 지주를 대신하여 소작지를 관리하는 ‘마름’이라는 직책이 널리 확대되었다. 지주가 멀리 떨어진 곳에 땅을 갖고 있거나 많은 토지를 보유하여 직접 관리가 힘들 경우, 이러한 부재지주不在地主를 대신하여 관리·감독의 역할을 수행하는 이가 마름이었다. 마름은 소작료 징수만을 대신한 것이 아니라, 소작인 감독·소작권 박탈·소작료 징수 및 보관·소작인 평가 등 소작지 운영의 전반에 걸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으므로 소작농을 상대로 절대적인 갑의 위치에 있었으며, 그 권한을 악용하여 갑질패악을 일삼는 자들이 많았다. 소작인을 자신의 마음대로 내쫓고 그 땅의 경작권을 다른 사람에게 돈을 받고 팔거나, 소작료를 속여 받아 차액을 횡령하기도 하고, 풍년임에도 지주에게 흉년 탓에 손해를 봤다고 거짓 보고하는 등 지주와 소작농 모두를 농락하는 전횡을 일삼았다.6일제강점기에도 명맥을 유지한 마름은 해방 이후 농지개혁법이 실시되고서야 소멸되었다.

비정상적인 상하관계를 통한 갑의 횡포는 반드시 근절해야 할 대상이다. 뿌리 깊게 박힌 그릇된 의식구조의 개선, 갑질에 상응하는 법적·경제적 책임의 부과, 약자에 대한 강력한 보호책 등이 수반되지 않는 한 우리는 또 다시 갑질 횡포와 마주하게 될 것이다. ‘을乙’이 언제든 내가 될 수도 있다. 끔찍하지 않은가.

 

1) 중국 서진西晉의 혜제惠帝(서진의 제2대 황제, 재위 290~306)때 일어난 내란을 말한다. 황족 8명의 골육상쟁이었으며, 서진 멸망의 단초가 되었다..
2) 우불憂弗이라고도 하며( 『삼국사기』 ), 중국의 『위서魏書』, 『양서梁書』, 『자치통감資治通鑑』 등에는 을불리乙弗利라고 전한다.
3) 『三國史記』 卷17, 高句麗本紀5, 美川王 元年(300)
4) 『高麗史』 卷128, 列傳41, 叛逆, 鄭仲夫.
5) 『高麗史』 卷128, 列傳41, 叛逆, 鄭仲夫.
6) 김 용 섭 , 1995, 『朝鮮後期農業史硏究』 Ⅰ, 지식산업사. 박찬승, 2007, 「한국전쟁기 합덕면 마을 주민간의 갈등」 『사회와 역사』 74, 한국사회사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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