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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주차] 금주의 Thema 인문학+

2017-10-18 04:11 1,795



 

우리는 여전히 정의를 외친다 -
소득 재분배에 대한 철학적 시각


공정하고 공평한 사회, 정의로운 국가에 대한 열망은 아직 식지 않았다. 매주 광화문에서 열리는 ‘100만 촛불의 민심’은 결국 특권·특혜·비선·정경유착 등을 없애고 정당한 노력으로 정당한 대가를 받는 정의(正義)를 추구하는 것이다. 정의는 공정한 분배의 문제다. 한정된 재화를 어떻게 나눠 가질 것인가란 물음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다. 소득 재분배에 대한 철학적 시작은 크게 공리주의, 점진적 자유주의, 급진적 자유주의로 나눌 수 있다. 공리주의는 19C 초반에, 점진적 자유주의와 급진적 자유주의는 1970년대 초반에 각각 존 롤스(John Rawls, 1921~2002)와 로버트 노직(Robert Nozick, 1938~2002)에 의해 제시됐다. 이들 사상은 소득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정부가 어느 정도 개입하는 것이 정의로운지에 대해 다룬다.

첫 번째 시각인 공리주의의 창시자는 영국의 철학자 밴담(Jeremy Bentham, 1748~1832)과 밀(John Stuart Mill(1806~1873)이다. 공리주의는 효용(한 인간이 주변환경을 통해 얻는 행복이나 만족감)의 개념에서 출발한다. 부유한 사람의 1만원보다 가난한 사람의 1만원이 큰 효용을 창출한다는 것이다. 한계효용체감은 총 효용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공리주의자들의 목표와 함께 정부가 소득의 공평한 분배에 힘써야 한다는 주장의 논리적 근거가 되고 있다. 하지만 공리주의자들은 소득의 완전균등분배는 거부한다. 평등에서 오는 이익과 근로의욕 저하에서 비롯되는 손해를 경계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시각은 점진적 자유주의다. 존 롤스는 그의 저서 『정의론(A Theory of Justice)』(1971)에서 두 가지 정의의 원칙을 제시했다. 제 1원칙은 ‘평등한 자유의 원칙’으로 모든 사람은 기본적 자유에 대해 동등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원리다. ‘법 앞에 만민은 평등하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제 2원칙은 ‘최소 수혜자에게 최대의 이익이 돌아가야 한다는 원칙’이다. 사회의 최소 수혜자에게 최대의 이익(불평등을 보상받을 만한 이익)이 주어지는 경우에 한해 불평등(차등 분배)을 인정하는 것이다. 다만, 그 불평등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 자체는 평등하게 부여돼야 한다.‘최소 수혜자에게 최대의 이익이 돌아가야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쉽게 설명하면, 롤스는 50, 50, 50씩을 갖는 사회보다 60, 70, 80씩 갖는 사회가 조금 더 정의로운 사회라고 봤다. 똑같이 나누는 것보다 불평등하지만 가장 적은 몫이 60으로 첫 번째 분배의 50보다 크기 때문이다. 40, 80, 100으로 나눌 경우 재화의 총합은 220으로 셋 중 가장 크다. 하지만 롤스는 최소 수혜자에게 돌아오는 몫이 50을 나눠 갖는 첫 번째 균등분배에 비해 적기 때문에 덜 정의롭다고 봤다.

롤스는 여기에 ‘초기 상태’란 전제를 추가한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개인적 특성이나 사회 경제적 지위, 가치관 등을 알지 못하는 ‘무지의 베일’에 가려져 있다. 롤스는 “모두 같은 입장에 있고, 아무도 자신의 사적 이익에 유리한 원칙을 세울 수 없다면 공정한 합의와 협상의 결과로 정의의 원칙(the principles of justice)이 도출된다”고 말했다. 자기이익을 극대화하고 타인의 이해관계에는 무관심한 개인이라도 초기 상태에 놓인다면, 자신 역시 하위층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느껴 하위등급에게 돌아가는 몫을 극대화하는 선택을 한다는 것이다.

반면 세 번째 시각인 급진적 자유주의를 강조했던 로버트 노직은 각 개인은 자기 자신에 대해 완전한 소유권을 지니며, 재화의 분배는 개인의 자유에 전적으로 위임해야 한다고 봤다. 개인이 재화를 취득하는 과정과 분배하는 절차가 합법적으로 이뤄질 경우 국가는 여기에 개입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국가는 다만 부정한 계약, 재화의 불법적 취득 에 대한 감시 역할만을 수행해야 한다고 노직은 주장했다. 그는 1974년 『무정부, 국가 그리고 유토피아(Anarchy,State and Utopia)』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이제 파이 한 조각을 받아들고 그 파이 조각을 잘못 썰었다며 다시 썰고 있는 사람 곁에 있는 어린애가 아니다. 중앙집권적인 배분이란 없다. 새로운 재산은 자발적인 교환과 인간들의 행동을 통해 형성된다.” 노직은 어느 정도의 불평등이 바람직한 수준인지를 판단하려는 시도 논의 자체가 쓸데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소득분배의 결정 과정만 정당하다면 그 결과가 얼마만큼 불평등하든지 그것은 공정한 것이다. 급진적인 자유주의자들은 기회의 균등이 결과의 균등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정부가 모든 이들이 재능을 발휘하고 성공할 수 있도록 기회의 균등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100만 명에 이르는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졌다. 이는 작금의 정치상황에 불만을 표출하고 정치적 구호를 전달하려는 의미도 있지만 “능력 없으면 부모를 원망하라, 돈도 실력이다”라는 막말을 사회 질서로 여기는 정의롭지 못한 세태에 대한 분노이기도 했다. 정의란 무엇인가. 적어도 빵을 만든 사람은 소득에서 배제되고, 빵을 나눠주는 사람이 자신의 몫부터 챙기는 사회는 정의롭다고 보기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정의를 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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