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회원 메뉴

개인회원 정보

이력서 사진
이력서 사진 없음
로그인 링크
로그인
회원가입 링크
아직 회원이 아니세요?

개인회원 서비스

취업뉴스

시사

[42주차] 금주의 Thema 인문학+

2017-10-26 01:52 1,303

“놀아야 사람이다”...
요한 하위징아 『호모 루덴스』


요새는 무엇이든 재미있고 볼 일이다. TV 예능은 물론 뉴스 보도, 마케팅뿐만 아니라 정치와 행정에 이르기까지 재미를 강조한다. 재미는 사람들의 관 심과 참여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대중은 제작비를 많이 들인 지상파의 ‘재미없는’ 프로그램 대신 조악하지만 ‘재미있는’ 1인 방송에 ‘별풍선’을 쏜다. ‘최순실 국정농단’처럼 엄중한 사건도 ‘순시리 닭 키우기’ 모바일 게임과 같은 유희의 소재로 거듭난다. 네덜란드의 문화사학자인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 1872~1945)는 놀이의 개념을 학문 연구의 대상으로 삼은 최초의 학자다. 그는 1938년에 발표한 저서 『호모루덴스(Homo Luens)』에서 인간의 본질을 유희라고 파악했다. 호모루덴스는 ‘유희하는 인간’이라는 뜻이다.

놀이는 기능적인 목적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노동이나 생산 활동과 구분된다. 또한 일상생활의 바깥에서 자유롭게 벌어지지만 참여자들이 나름대로 규칙과 원칙에 따라 경쟁한다는 특징이 있다. 상상력과 감성을 자극하는 놀이는 문화 기능을 형성하는 데 필수적이며 미술, 연극, 무용, 스포츠 등 다양한 창조 활동의 바탕이 된다. 인간이 그릇을 음식물을 담는다는 도구적 기능에만 치중했다면 신석기 시대의 빗살무늬토기가 고려청자와 같은 유려한 예술품으로 발전했을 리 없다. 이성을 뛰어넘어 즐거움의 미학을 추구하는 감성적 욕망이야말로 문명을 다채롭게 발전시킨 원동력이다. 하위징아는 바로 그것이 놀이라고 생각했다. 하위징아는 “우리가 ‘문화’라고 부르는 것들의 대부분은 호모루덴스의 충동이 만들어낸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모든 형태의 문화는 그 기원에서 놀이 요소를 발견할 수 있고 인간의 공동생활 자체가 놀이 형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가령 놀이와 관련성이 없어 보이는 재판에도 소송 당사자들이 법원이라는 특정한 공간에서 이기고 지는 일종의 내기적 속성이 담겨져 있다. 하위징아는 생명보험의 근원도 중세 때 가능성을 놓고 벌이던 내기에서 유래했다고 분석한다. 이는 놀이를 문화의 하위 개념으로 간주했던 통념을 뒤집은 획기적인 주장이었다. 인간의 문화는 놀이 속에서 자연스럽게 활성화된 유희적 인간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에 놀이는 귀족 계급이 여가 시간에 행하는 고도의 지적인 작업으로 간주됐다. 중세 시대에 놀이는 생산 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유한계급(노동을 멀리하고 예술, 오락 등 비생산적인 일에 탐닉하는 사람)의 전유물이었다. 18C 유럽 왕실의 바로크 양식과 로코코 양식의 현란한 장식은 ‘누가 더 잘 노는가’를 겨루는 경쟁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산업혁명을 거치고 20C 자본주의 시대에 진입하면서 놀이의 정신은 쇠퇴하고 말았다. 호모파베르(Homo Faber, 도구적 인간)가 호모루덴스를 대체하기 시작했다. 놀이는 아이들의 영역으로 밀려났고 근엄하고 이성적인 지성인이 세상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놀이 경쟁은 이윤 극대화를 위한 걸림돌로 지탄받았다. 산업예비군을 육성하는 학교에서는 노는 것을 죄악이라고 가르쳤다. 노동을 마치고 잠시 주어지는 여가 생활은 놀이라기보다 노동으로 쌓인 피로를 풀기 위한 재충전 시간일 뿐이다. 도제식 교육을 거쳐 생산의 모든 공정을 도맡았던 과거의 장인(匠人)은 몸이 고되더라도 자신의 일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분업화 속에서 톱니바퀴 일부처럼 움직이는 노동자들게 유희의 요소는 존재하지 않는다. 재미와 자유를 잃고 현실이라는 족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생을 사는 사람은 호모루덴스가 아니다. 하위징아는 이처럼 놀이 정신을 잃어버린 현대인에게 다가올 비극을 걱정했다.

하지만 오늘날 디지털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자본주의의 풍토가 호모루덴스의 귀환을 재촉하고 있다. 전통적인 생산 중심 자본주의는 디지털 기술의 발전을 통해 현실과 가상 세계의 경계가 모호하고 유희적 요소가 중요해진 소비 중심 자본주의로 이동하고 있다. 제품의 장점을 고지식하게 나열해봤자 소비자는 주목하지 않는다. 페이스북 ‘좋아요’ 버튼 클릭 수를 늘리려면 ‘약 빨고 만든 듯한 병맛 광고’가 제격이다. 이러한 추세는 현실의 외부에서 구성되는 놀이의 전통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물론 자본주의의 기능 연장을 위해 유희적 요소로서 호모루덴스의 본질을 축소하는 경향은 경계해야 할 것이다.







저작권은 잡코리아(유)에 있으며,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지 합니다.

0 / 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