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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주차] 금주의 Thema 인문학+

2017-12-01 01:54 1,524

 

지옥에서 핀 자유의 꽃...
아우슈비츠가 남긴 문화 텍스트들


“조금만 더 잘 수는 없을까?” 이른 아침 자명종 소리에 지친 몸을 이끌고 일터로 나서는 직장인들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자유다. 자유의 개념을 정교히 해부해 현대 철학사에 이름을 남긴 영국의 철학자 이사야 벌린(Isaiah Berlin, 1909~1997)은 자유를 적극적 자유와 소극적 자유 두 가지로 구분했다. 적극적 자유란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주체적 자유이며 소극적 자유는 외부의 강제가 없는 상태, 즉 타자에 의해 방해받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벌린은 소극적 자유가 인간에게 훨씬 간절한 자유라고 봤다. 이는 타인의 위협이나 감금, 노예 상태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소극적 자유가 박탈된 극단적인 사례로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 나치의 ‘살인 공장’이었던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를 들 수 있다. 아우슈비츠에서는 인류 최초로 산업적인 수단을 이용한 인종 학살이 이루어졌다. 나치는 우수한 혈통인 아리안 족을 보존하고 열등한 민족은 말살하여 국가 중흥을 꾀한다는 명분 아래 유대인 학살을 자행했다.

노동에 부적합하다고 여겨지는 아이들과 환자, 노인은 가스실로 보내졌다. 몇 분전 까지만 해도 멀쩡히 살아있던 가족이 소각장을 거쳐 한 줌의 재로 돌아오는 끔찍한 상황. 이들은 생을 놓아버린 순간에야 나치로부터 자유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소극적 자유를 박탈당한 극한 상태에서도 인간에게는 태도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남는다. ‘희망을 가질 것인가, 삶을 포기할 것인가.’ 유대인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은 아우슈비츠 수용소라는 죽음의 문턱에서 ‘왜 살아야 하는지’를 망각하고 희망의 끈을 놓아버린 사람들은 인간으로서 존재가치를 잃어버리고 이내 무너져 버린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반대로 희망을 가진 사람은 가스실에 끌려가더라도 당당히 기도하며 인간의 긍지를 가진 채 최후를 맞이했다. 그는 자신의 경험으로 태도 선택의 자유를 중요시하는 로고테라피(logotherapy) 이론을 세웠고 이는 전 세계인의 공감과 지지를 얻었다.

오늘날 폴란드에는 두 곳의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남아 있다. 나치는 1945년 1월 대량학살의 증거를 지우려고 했다. 그러나 소련군이 예상보다 일찍 도착해 건물과 막사 일부가 남았다. 덕분에 아우슈비츠 수용소엔 당시의 참혹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고, 아우슈비츠는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돼 있다. 수용소 입구에는 ‘노동이 자유롭게 하리라(ARBEIT MACHT FREI)’는 독일어 문구가 그대로 남아 있다. 노동할 수 없는 자는 처형됐고, 죽지 않으려 하는 자는 죽도록 일을 해야만 했다. 이곳에서 죽음을 맞이한 유대인들의 숫자는 약 40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독일 나치가 아우슈비츠에서 발생한 학살을 철저하게 숨기기 위해서 기록을 전부 없애고 시신들을 소각시켰기 때문에 정확한 집계는 되지 않고 있다.

다만 아우슈비츠가 해방됐을 때 그곳에는 양복 안감으로 사용하려고 했던 머리카락 7.7톤과 의복 120만 벌, 산더미 같은 안경·구두·장난감과 낙오된 환자 7500명만이 남았다고 하니 당시의 대학살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최근 독일은 과거 나치 정권 때 아우슈비츠 수용소 운영에 관여한 이들과 관련한 재판 기록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나섰다. 전쟁범죄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가 학살 기록을 보존하는 것은 드문 일로, 과거의 잘못을 잊지 않고 반성에 철저한 독일의 모습을 보여준다.

제2차 세계대전 때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와 관련한 문학 작품 중에서는 유대인 소녀 안네 프랑크가 아우슈비츠에서 죽음을 맞기 전까지 나치의 박해를 피해 숨어 지내면서 일상을 기록한 『안네의 일기』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안네의 일기』는 2009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그 외에도 영화 ‘쉰들러 리스트’, ‘인생은 아름다워’, ‘피아니스트’나 만화 ‘쥐’ 등에서 다양한 장르로 아우슈비츠가 조명됐다.

세계적인 문호 톨스토이는 1812년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공을 이야기하는 『전쟁과 평화』를 쓰면서 “다른 방법으로 역사의 증인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사건의 피상적 기록을 넘어, 사건을 체험한 개인의 고통을 온전히 복원하는 예술적 기록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홀로코스트를 다룬 수많은 문화 텍스트가 존재하지만 앞으로도 아우슈비츠는 철학자의 사유로, 정부의 기록 문서로, 예술가의 언어로, 끊임없이 복원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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