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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BKOREA

합격자소서

합격자소서 상세

2015년 하반기 (주)SBS

신입 감독·연출·PD
  • 지방4년 학교
  • 신문방송학과 학과
  • 3.9/4.5학점
  • 2 회 자원봉사

자소서 항목

  1. Q1 자유 양식

자소서 항목 질답

  • 사람 냄새나는 프로그램
    저는 대학교 4년 동안 매년 여름과 겨울에 2주씩 중학생학생캠프를 진행하고 방송 팀을 맡아 봉사해왔습니다. 처음에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다스리기 바빠서 친구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왜 배우려고 하지 않는 것인지 화만 났었습니다.

    하지만 교육이라는 것을 생각하면서 제가 중학생 때 어땠는지 생각해보게 되었고 나도 그때 그랬었지,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한 과정들 속에서 학생들이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귀 기울여 듣게 되었고 나이가 많다고 해서 가르치려고 들 때부터 이미 그 사이는 멀어지게 되는 것임을 자주 깨달았습니다. 그러면서 아프리카 해외봉사를 하면서도 느꼈던 교육과 봉사의 참 의미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몇 몇 아이들에게만 교육을 하는 것이 아니라 방송 매체를 통해 전 세대 모두에게 역사를 알리고 사회의 이야기들을 가르치고 싶다는 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내가 PD의 꿈을 가진 것은 나 혼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내 다음에게, 다음 세대에게 이로운 것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꿈을 실현하게 해줄 수 있는 곳이 바로 SBS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방송이라는 매체는 굉장히 특별한 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래 보존되며 많은 사람들에게 가장 빠르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매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방송은 양면성을 가집니다. 그래서 무엇보다 조심스러운 매체라고 생각합니다. 방송이 다음 세대를 이끄는 가장 큰 힘이라고 판단하고 SBS의 다양한 프로그램들 중에서도 SBS 스페셜 등과 같이 평소에는 생각하지 못하고 접하지 못하는 사회 곳곳의 이야기들을 만들어 전하고 싶습니다.

    제가 SBS 방송이라는 매체를 통해 평소에는 깊게 생각하지 못했던 사회의 문제들을 배우고 들여다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된 것처럼 저도 교육하고 깨우치는 콘텐츠를 만들어 많은 사람을 이롭게 하는 일을 하고 싶고 그 일을 하는 곳이 SBS가 되기를 바라며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하쿠나마타타 (케냐 키스와힐리어로 ‘문제없어’라는 뜻)
    2012년 한 해 동안 아프리카 케냐에서 해외봉사활동을 했습니다. 익숙하고 편안한 한국에서의 삶을 떠나 새로운 도전 속에서 제 자신의 한계를 만나고 극복해보고 싶었습니다. 아프리카에서의 삶은 저의 육체를 참 힘들게 했습니다. 매일 먹을 것이 부족해 배가 고팠고, 건기에는 물이 없어서 씻기가 힘들었습니다. 교통수단이 없어 몇 십 킬로미터를 걷기도 했고, 말라리아모기와 벼룩에 물려 죽을 뻔 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현지인 친구가 일주일 동안 물이 없어 씻지 못했던 저에게 자신의 모든 용돈을 털어 물 2바가지를 사다 주었습니다.

    저는 그런 친구를 보며 불평불만을 쏟아내며 힘들어하던 제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지만 자기 자신을 생각하기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는 그 친구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금 내가 여기에서 겪는 어려움은 어려움이 아니라 기쁨이구나, 행복이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한국에서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부족함 없이 살면서 참 이기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아프리카에서의 1년은 작은 것에 느끼는 감사와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알게 해주었습니다.

    제가 만난 아프리카에서의 형편은 배가 고프고, 물이 없고, 모기에 물려 어려운 상황도 있었지만 아프리카 사람들과 어울려 함께 지내는 동안 저는 경쟁과 질투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저의 작은 도움이 그들의 삶 속에 큰 도움이 되고 기쁨이 되는 것을 보면서 나만을 위하는 삶이 행복한 삶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국에 돌아와서 물, 전기, 먹을 것, 입을 것들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었던 저의 생각도 바뀌었고, 작고 사소한 것들이 소중하고 감사했습니다.

    학교에서 저는 친구들과의 경쟁 속에서 내 옆에 있는 친구를 이기는 방법을 배워왔습니다. 하지만 아프리카에서의 1년을 통해 나만을 위하며 살던 이기적인 삶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을 위할 줄 아는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진정한 친구 사이
    저는 조금 다른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습니다. 더 큰 세상을 경험하기를 바라셨던 부모님의 권유로 기숙형 대안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자유롭다는 특징을 가졌지만 저는 그곳을 완전한 학교라고 생각하고 학교가 정한 규칙과 시키는 일에 대해서는 완벽하게 숙지하고 그대로 이행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두 달이나 세 달에 한 번 정도 밖에 집에 가지 못하기 때문에 학교에서 탈출을 시도하는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화장실에 있다가 저와 가장 친한 친구 두 명이 얼마 후 새벽에 학교를 나가려고 계획하는 대화를 듣게 되었습니다. 두 친구가 학교를 나가려고 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다른 친구에게 이 상황을 말 할 수도 없었고, 우연히 들었기 때문에 또 내가 그들에게 아는 척을 하게 되면 몰래 들었다는 생각을 하게 될까봐 두려웠습니다. 당연히 선생님께 말씀 드리고 친구들이 나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 맞지만 쉽게 선생님께 갈 수가 없었습니다.

    작은 학교이고 내가 그 친구들의 계획을 선생님께 이른 것이 금방 들통 나면 나는 친구를 잃게 되고, 앞으로 이 작은 학교에서 친구들 사이의 일을 선생님께 일러바치는 사람으로 낙인 찍힐까봐 두려웠습니다. 고민 하던 중 내가 그들의 친구라는 것을 믿어보기로 했습니다. 저녁에 두 친구를 불러 솔직하게 이야기했습니다. 우연히 듣게 되었고, 너희들의 말을 제대로 들어보지도 않고 선생님께 내가 생각한대로 말하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너희들이 학교를 나가지 않기를 바란다는 마음을 전했습니다. 이야기 중 두 친구가 가진 고민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꿈이 없이 공부하는 것과 답답한 기숙학교 생활이 힘들다고 했습니다. 그날부터 그들에게 매일 긍정의 기운을 넣어 주었습니다. 제가 쓴 노트를 빌려주면서 공부를 도왔고, 사감선생님께 말씀 드리고 몰래 3명이서 라면을 끓여먹은 추억도 있습니다. 친구들의 마음을 알고 나니 그들이 진짜 무슨 생각과 고민을 하는지 알게 되었고 저희는 더 끈끈하게 마음이 연결되었습니다.

    창의성은 ‘이해’이다
    고등학교 졸업발표회에서 메인 공연인 뮤지컬 연출을 맡았었습니다. 대본부터 무대연출까지 준비하면서 작은 공연 이였지만 친구들의 특성과 학교를 졸업하는 우리들의 마음을 잘 담아내 새로운 뮤지컬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처음 대본을 쓰고 뮤지컬을 기획하는 단계가 가장 어려웠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써야 할까?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때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창의적인 생각이었습니다. 평소에는 놓치고 지나갔던 순간의 작은 찰나들을 포착해서 대본으로 녹여내야 했습니다. 그때 저는 없는 이야기를 만들기 보다는 졸업 뮤지컬이기 때문에 함께 3년간 동고동락 했던 친구들을 다시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다시 그 친구의 새로운 모습과 뮤지컬을 통해 보여 줄 수 있는 부분들을 찾았습니다.

    이 친구는 2학년 MT 장기자랑 시간에 노래를 잘했었지, 주인공을 시키자. 이 친구는 방황하고 반항하던 중학교 시절보다 이 학교를 통해서 변화된 사연이 있지, 대본에 이 친구의 이야기를 써보자. 또 선생님들께 감사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던 우리의 마음을 전해보자. 하면서 뮤지컬을 창작하는데 가장 중요한 베이스를 뮤지컬에 참여할 친구들의 생각과 마음을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창작과 창조, 창의와 같은 영역은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어떤 것을 발견하고 만들어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창의성은 없는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쉽게 지나쳤던 이들의 이야기를 다시 듣고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해를 거치다 보니 자연스럽게 누구는 이런 이야기가 있고, 누구는 노래를 잘하고, 누구는 춤을 잘 춘다는 것을 알고 나서 막막하기만 했던 뮤지컬의 기초와 대본이 제작되었습니다. 어떻게 내가 30분이라는 시간을 채우는 뮤지컬을 만들 수 있을까 걱정도 했지만 3년 간 우리들의 이야기를 새로운 것에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실제 우리를 이해하고 깊게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창조가 되었습니다.

    긍정의 ‘변화’
    고등학교 시절부터 많은 봉사활동을 했습니다. 이 사회에는 감사하게도 따뜻한 가슴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있어서 어려운 사람을 돕는 봉사활동이 참 많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흔히 생각하기에 봉사활동은 어려운 형편을 돕거나 고픈 배를 채워주는 물질적인 봉사만을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힘들고 어렵게 사는 사람들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삶을 긍정적으로 살 수 있고 행복한 삶을 꿈꿀 수 있는 마음의 힘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아프리카에서 보낸 1년은 저에게 봉사활동의 참된 의미를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봉사활동이라고 하면 내가 가서 집을 지어주거나 먹을 것을 주거나 다친 상처를 치료해주는 일을 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과 함께한 시간 동안 진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어떤 사람, 마음의 고통과 상처를 만져줄 사람, 다른 사람들은 무시하는 자신의 고민들을 귀 기울여주는 사람이었습니다. 케냐 나쿠루의 한 마을에 간 적이 있습니다.

    치열한 내전이 있었던 2008년 남편을 잃고 4명의 아이를 데리고 사는 가난한 한 여자를 만났습니다. 하루에 한 끼밖에 먹지 못하고 너무나 궁핍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곳에 머문 한 달 동안 매일 그 여자의 집을 찾았습니다. 물론 먹을 것을 사서 아이들에게 주었지만 그 여자는 먹을 것을 찾기보다는 자신이 살아온 아픈 과거와 남편을 잃은 슬픔을 이야기했습니다.

    매일 저와 만나 이야기를 하면서 표정이 변화되고 행동이 변화되고 삶에 활기가 넘치는 변화를 보았습니다. 형편은 아직도 똑같았습니다. 어렵고 가난했지만 생각이 변화되면서 점점 삶도 바뀌어갔습니다. 이외에도 저는 많은 변화들을 맛보았습니다. 변화는 가난한 사람이 부자로 바뀌고 아픈 사람이 병이 낫는 것과 같은 외적인 변화도 있지만 진짜 생각이 바뀌어 변화하는 모습은 새로운 삶을 살게 해주는 원동력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과거를 기억하는 작은 실천
    작년 4월 우리의 마음을 너무나도 아프게 했던 세월호 사고가 있었습니다. 더 이상 말 할 수도 없는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특히 다른 사람보다 저는 전남이라는 같은 지역사회에 살고 있었고 알고 지내던 친구의 동생이 사고를 당했습니다. 매일 언론매체는 세월호에 대한 기사를 쏟아내고 방송했습니다.

    1년이 지난 올해 여름 서울을 방문할 일이 있어서 광화문에 간 적이 있습니다. 여전히 세월호 집회가 열리고 있고 세월호 사건의 진위파악과 사과를 위한 농성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이 사회에 아무런 영향을 끼칠 수 없는 작은 제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세월호 사건을 바라봐야 하는지 큰 고민이 되었습니다. 한쪽에서는 경찰이 대치하고 있고 그 안에서는 노란 리본을 외치며 세월호 집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당사자는 아니지만 그들이 원하는 것은 딱 한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벌어진 일을 다시 되돌려 달라는 것이 아니라 정확한 사건의 진상규명과 제대로 된 사과라고 생각합니다. 유가족들이 원하는 것은 아들, 딸들의 목숨을 값으로 정한 1억, 2억이 아니라 죄송하다는 진짜 마음을 원하는 것입니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방송을 통해 많은 과거의 역사들을 다시 조명하는 프로그램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들을 깊게 보았습니다. 할머니들이 원하는 것이 피해보상이나 물질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잘못을 했으면 인정하고 사과하는 그것을 바란 것인데 그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봅니다.

    광화문 광장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종이에 서명하는 일과 응원의 악수를 건네는 일뿐이었지만 그 분들에게 작은 제가 큰 힘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보면서도 광복절 그날만큼은 카페에서 친구들과 잡다한 수다를 떨기보다는 제가 보았던 프로그램과 그 날의 진실을 이야기하고 기억하자고 당부했습니다. 작은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이 사회의 문제들을 기억해주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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