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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하반기

인턴 경영·비즈니스기획 합격자소서

합격자 정보 수도권4년제 / 컴퓨터공학과
  • 학점3.1
  • 토익705
  • 자격증1 개
  • 인턴1 회

자소서 항목 질답

  • - 아버지
    제가 생각하는 아버지는 늘 ‘어른’이십니다. 아버지께서는 맏이시고 또 둘째 동생(삼촌들)과 나이차이가 많이 나기 때문에 책임감이 강하십니다. 그리고 저희를 언제나 챙겨주셨고 또 든든한 지원군으로서 저희 뒤를 지켜주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저희 3남매가 늘 발전적이고 건설적인 삶을 살라고 하셨습니다. 늘 “독자보다는 작가가 되어라”라는 말을 자주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저희에게 늘 모범이 되셨고 솔선수범하셨습니다.

    - 어머sl
    어머니께서도 맏이시라서 책임감이 엄청 강하십니다. 어머니로서의 삶을 사시면서 많은 것을 희생하셨습니다. 저는 어머니께서 미용이나 패션에 투자하시는 것을 본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만큼 절약정신이 강하시고 저희를 많이 챙겨주셨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께서는 굉장히 성실하신데 그 예 중에 하나가 저희 3남매가 학교를 다니는 동안 아침밥을 굶은 적인 단 한번도 없습니다.

    - 큰누나
    큰누나는 저에게 제 2의 어머니와도 같습니다. 큰누나는 늘 자신보다 저를 챙겨주었고 양보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무슨 고민이 생기면 늘 들어주고 해결해주었습니다. 또 조언자로서의 역할도 해주었습니다.

    - 작은누나
    작은누나도 역시나 우애가 깊습니다. 어렸을 때는 누나와 많이 다투었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가깝고 챙겨주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서로 고민이 있으면 나누고 또 어려운 일이 생기면 누구보다 먼저 도와줍니다.

  • - 신뢰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신뢰’입니다. 저는 겸손이 미덕이라고 배웠지만 한 가지 만큼은 꼭 자랑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약속을 지키지 않은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가장 간단히 친구들과 만나는 약속에도 저는 갑자기 급한 일이 생긴 경우를 제외하고는 단 한번도 늦어본 적도 지키지 않은 적도 없습니다.

    약속을 지키는 것은 저만의 신념이고 또 그 사람을 가늠하는 척도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신뢰라는 것은 열 번을 잘하다가도 한 번을 잘 못하면 큰 타격을 입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떤 일이 있더라고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 중재자의 입장
    저는 어떤 모임에서 트러블이 생기면 늘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해왔습니다. 트러블이 생겼으면 왜 생겼는지를 파악했고 서로의 입장을 들어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럴 경우에는 모두에게 잘못이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상대방들의 생각에 귀를 기울여 전달했고 오해의 소지를 풀게끔 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저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중립적인 견지를 취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때로는 안 좋게 작용할 때가 간혹 있습니다. 의사표현이라는 부분에 있어 확실할 때는 확실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분쟁을 피할 수 있도록 늘 의사표현에 있어서 조심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분쟁이라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더 발전적이고 건설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윤활유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의사표현을 좀 더 분명하게 하는 연습을 했고 혹시라도 분쟁이 생길 때에는 저의 중립적인 소통 능력으로 풀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 - 음치, 박치가 밴드에 들어가다!
    신입생 때 선배님들의 음악 밴드 공연을 보고 나도 언젠간 무대에 꼭 한 번 서보리라는 다짐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그 날 이후 바로 통기타를 구입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밴드 동아리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음치에 박치라서 통기타를 능숙하게 다루기란 하늘에 별 따기와도 같았습니다. 그래서 따로 통기타학원을 등록했고 또 매트로놈을 사서 수백 번 연습을 했습니다. 그 결과 저는 1년 뒤에 무대에 설 수 있었고 음치와 박치를 극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 작곡가가 되어보다!
    음악에 대한 열정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음치와 박치를 극복한 자신감으로 내친김에 작곡에 도전해보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작곡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장비와 악기들을 구하는 것도 문제였지만 무엇보다 학업과 병행해야 한다는 것이 시간적인 측면에서 많은 부담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휴학을 결심했고 장비와 악기들을 구입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모은 돈으로 작업실을 임대했고 컴퓨터, 스피커, 키보드, 기타, 베이스를 사들였습니다. 하지만, 기타밖에 칠 줄 몰랐던 제가 무턱대고 일을 벌여 놓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끊임없는 노력으로 나만의 앨범을 만들다!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제가 아니었습니다. 바로 작곡학원을 등록했고 피아노와 베이스를 독학으로 파기 시작했습니다. 제대로 된 노래 한 곡만 만들자는 목표로 열심히 달렸습니다. 그 당시 제 작업실이 지하작업실이었고 또 여름이라 굉장히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하루에 12시간씩 작곡에 몰두했습니다.

    그 결과 8개월이 지나서야 제대로 된 노래 한 곡을 만들 수 있었고 녹음까지 끝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 후에는 곡이 수월하게 써져 총 15곡의 노래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 평생의 취미를 갖다!
    그 때의 경험은 아직까지도 잊을 수가 없는 좋은 추억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좋았던 것은 ‘평생의 취미’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피아노, 기타뿐만 아니라 베이스, 드럼까지 다룰 수 있게 되었고 현악기나 기타 음악을 만드는 요소에 대한 개념이 잡혔습니다. 그래서 언제든지 음악을 만들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요즘에도 틈이 날 때마다 음악을 만들곤 합니다. 감정이 복잡할 때마다 작곡을 하면 감정이 정리가 되었고 삶의 활력소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 - 어르신 핸드폰 사용법 강의를 하다!
    2009년부터 **에서 주관하는 봉사단체인 ****** 와 KT&G에서 주관하는 ** ******에 꾸준하게 참여해 왔습니다. 먼저 15명 남짓한 인원이 한 팀을 이루어 어르신들께 모바일 교육을 해드렸습니다. 사진은 어떻게 찍는지, 문자는 어떻게 보내는지, 알람을 어떻게 맞추는 지 등을 가르쳐 드렸습니다. 사실 젊은 세대에게는 굉장히 쉬운 것들이지만 어르신들은 생각보다 힘들어하셨습니다. 그리고 봉사가 끝난 뒤에 제 담당 어르신께서 벚꽃을 찍어서 “선생님 사랑해요. 고마워요” 라고 문자를 보내주신 게 아직까지 잊혀지지 않습니다.

    - 아이들의 미소를 보다!
    저는 팀장으로서 기획봉사를 해본 적이 있습니다. 한 사회복지센터를 맡아 주어진 예산 범위 내에서 어떤 봉사를 할지 기획하고 또 실제로 그렇게 봉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과자집 만들기부터, 박물관에서 연 만들기, 과학관 체험 등 아이들의 학습과 발달에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기획했습니다. 많은 인원들을 관리하는 것이 어려웠고 그리고 팀원들을 잘 따르도록 하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팀원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어서 최대한 문제를 공유하고 또 해결할 수 있도록 분배했고, 아이들의 안전에 만전을 기했습니다. 그리고 처음에는 차갑던 아이들이 서서히 마음을 열기 시작했고 아이들의 얼굴에서 미소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5개월 동안의 기획봉사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습니다.

    - 국제 재즈 축제의 스텝이 되어보다!
    2011년도에 저는 *********축제에 스태프로 참여를 해봤습니다. 저의 역할은 축제의 홍보와 진행요원 및 기념 재즈 CD앨범을 판매하는 것이었습니다. 홍보와 진행요원으로서의 역할을 할 때는 단체로 그리고 매뉴얼대로 행해서 편하고 재밌었습니다. 하지만, 앨범을 판매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저희에게 10장의 앨범CD가 분배되어 있었고 진행본부에서는 꼭 팔아달라는 당부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사람보다는 외국 사람을 공략하기로 했습니다. 처음에는 말이 잘 나오지 않아 당황했지만 몇 번 해보다보니 익숙해졌고 그 결과 모두 팔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성공적으로 축제를 마칠 수 있었고 사람들과도 많이 친해졌습니다.

    - 인맥과 봉사를 동시에 잡다!
    여러 봉사활동을 하면서 뿌듯하기도 하고 보람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가장 좋았던 점은 바로 인맥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사실 타지생활을 했던 탓에 아는 사람이 많이 없어서 외로울 때가 있었는데 봉사활동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7개 정도의 봉사를 했었고 지금까지 연락이 유지되고 정기적인 모임을 갖는 단체가 4개정도 됩니다.

    아직까지도 만나면 즐겁고 또 재미있습니다. 봉사를 하면서 어려운 사람들에게 그리고 무언가에 기여했다는 것이 기쁘기도 했지만 아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모릅니다.

  • - 컴퓨터 공학과에서 배우지 않는 것들을 배우다!
    저는 컴퓨터공학과 학생입니다. 저희 과에서는 컴퓨터에 들어가는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이론을 배우고 실습을 합니다. 그리고 소프트웨어를 만들 때 어떤 알고리즘을 쓰고 또 어떤 언어를 써야 더 효율적일지를 공부합니다.

    하지만 저는 컴퓨터공학과로서 부끄러웠던 적이 있습니다. 지인들이 컴퓨터가 고장났다고 했을 때나 실제로 어플리케이션을 만들 수 있냐는 질문, 그리고 기본적인 엑셀이나 파워포인트를 잘하겠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사실 답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컴퓨터공학과에서 배우는 것들은 ‘효율’에 관한 학문에 더 가깝기 때문에 일상적으로 우리가 접하는 컴퓨터에 관한 것들을 배우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때부터 저는 컴퓨터공학과로서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워드프로세스와 컴퓨터활용능력을 공부했습니다. 기본적으로 한글이나 워드, 그리고 엑셀, 데이터베이스에 관한 것들은 다룰 줄 알아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UCC편집에도 한 때 시간을 쏟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정보처리기사 필기를 합격한 상태이고 앞으로 실기도 취득할 예정입니다.
    이렇듯 컴퓨터공학과 학생으로서 과 전공과 그리고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컴퓨터활용을 모두 공부하고자 했고 또 실제로 능숙하게 다룰 줄 알게 되었습니다.

  • 근로가 국가의 근간이다!
    저는 근로가 국가를 이루는 근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근로에서 파생되어 나오는 소비, 생산, 투자 등이 바로 국가가 운영되는 원동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근로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근로의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것이 실업일수도 있고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것 일수도 있습니다. 사실 ‘근로’라는 것은 국가뿐만 아니라 개인의 인생에서도 막대한 영향을 차지하기 때문에 근로의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다면 국가의 기틀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이에 근로자들을 보호하고 또 복지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일상생활에서 근로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고용주들이 많습니다. 외국인 노동자나 미성년자 그리고 소규모 업소에서는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기 때문에 부당한 처사를 당하더라도 하소연 할 곳이나 구제할 데가 잘 없습니다. 또, 산재나 재활에 대해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근로복지공단에서 일하면서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런 분들의 권리까지도 보장해드리고 싶고 모든 근로자가 정당한 권리를 가지면서 일할 수 있도록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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