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포항 출신의 부모님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남들과 비교했을 때 부족할 것 없는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유치원은 물론이고, 과외 선생님을 붙여 주시는 등 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부모님께서는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유년기가 지나고, 초등학교, 중학교 그리고 고등학교를 다닌 후 스무 살이 되었습니다. 스무 살이 된 저는 마치 십 대 때 학교에서 공부만 하던 스트레스를 풀듯 대학교 새내기 생활을 즐기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때까지는 남들과 같은 삶이 지속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2017년 11월 중순이었습니다. 주말에 본가로 돌아온 저를 아버지께서 할 말이 있다며 조용히 부르셨습니다. 건강에 이상을 느낀 아버지께서 병원을 찾았다가, 간암 판정을 받았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그냥 암도 아닌, 더 이상 손써볼 수 없는 말기 암이라고 말입니다. 당시 저는 군 입대를 앞두고 있었습니다. 아픈 가족을 두고 군대를 갈 수 없다는 생각에 군 입대를 미루려고 하였으나, 아버지께서는 제가 예정된 시기에 군대에 가기를 바라셨고, 그 뜻에 따라 저는 예정된 날짜에 입대를 하게 되었습니다.
군대라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과 동시에, 매일 전화를 드릴 때마다 전화기 너머로도 짐작할 수 있던 악화되는 아버지의 병세로 인해 하루하루 삶을 버티기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힘들다고 해서 그 상황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는 제가 직면한 상황을 이겨내고 성장하고 싶었습니다. 주특기를 위해 숙지해야 할 교범은 외울 수 있을 정도로 공부하였고, 일과 중 과업이 주어지면 먼저 하겠다고 나섰습니다. 그렇게 자대 배치와 동시에 아버지의 건강 상태로 인해 간부들과 선임들의 걱정을 사던 신병이었던 저는 그들의 신뢰를 얻고 차차 자리를 잡아갔습니다.
자대 배치를 받고 두 달 후인 2018년 7월, 작전 진지에서 임무 수행을 하던 저는 아버지께서 위독하시다는 전화를 받고 급하게 휴가를 나가 아버지를 뵈었고, 임종을 지켜드리고 상을 치렀습니다. 그렇게 부친상을 치르고, 다시 부대로 돌아와 잠깐의 방황하는 시간을 겪었지만 이전에 하였던 대로 주어진 일을 책임감 있게 수행하였습니다. 그렇게 군대라는 공동체에 잘 적응할 수 있었고, 분대장 교육을 우수한 성적으로 수료하고, 분대장 견장을 다는 등 문제없이 무사히 군 생활을 마치고 병장 만기 전역을 할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저는 군 생활로부터 도망치는 선택을 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이 닥쳐서 막막하더라도, 그 순간 저에게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면 긍정적인 결과와 함께 더 성숙해진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앞으로 인생을 살아가며 크고 작은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어떠한 문제가 닥치더라도, 지난날 군대라는 공간에서 어려움을 이겨냈던 것을 상기하며 힘든 순간을 극복해 낸 경험을 통해 끈기와 자신감을 가지고 어려움을 헤쳐 나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