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적 소양이 엔지니어 센스를 키운다
LG전자 TV기구모듈러팀 도홍해 선임연구원
LG전자는 TV와 냉장고, 에어컨, 스마트폰 등 다양한 생활가전 제품들을 개발해 판매하는 회사다. 각 제품별로 연구 조직이 별도로 존재하는데, 그중에서 도홍해 연구원은 TV를 전문으로 개발하는 연구소의 TV기구모듈러팀에 소속돼 일하고 있다.
TV모듈이라는 단어가 일반인에게는 다소 생소하게 느껴진다. TV기구모듈러팀은 무엇을 하는 곳인가?
우리가 하는 일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는 먼저 ‘모듈(Module)’과 ‘기구’라는 단어부터 설명해야 할 것 같다. 모듈이란, 여러 가지 부품이 하나로 묶인 상위의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비행기에는 수십만 가지의 부품이 들어가지 않나. 그것들을 기능과 역할별로 묶어서 날개부, 동력부, 실내내장, 연료부 등으로 나눌 수 있고, 그렇게 큰 구분으로 나뉜 각각을 모듈이라 부른다. 즉, 몇 가지의 모듈들이 모여 하나의 제품이 만들어진다고 보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기구’란 산업체에서 주로 쓰이는 단어인데, 외관을 포함해 제품의 기계공학적인 전 부품을 지칭하는 말이다. 즉, TV기구모듈러팀은 TV의 외관을 포함한 기구적인 부품을 모듈 단위로 연구하고 개발하는 팀이라고 볼 수 있겠다.
담당하고 있는 일을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팀 내에서 나는 TV의 선행 외관 기술 파트를 담당하고 있다. TV 외관에 사용되는 소재와 마감 후처리 방법 등을 연구하고 더 나은 외관의 제품을 만드는 것이 내 역할이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도출되면 전시회나 파트너사 등을 방문해 관련자들과 미팅을 하기도 하고 또 직접 샘플을 만들어보면서 아이디어를 현실화시키는 작업을 주로 하는 편이다. 일과는 매우 유동적이지만 보통 오전에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일들을 정리하고 업무 관련자들과 이를 공유하는 시간을 갖는 편이다. 오후에는 팀원들과 함께 부품을 검토하고 더 좋은 아이디어를 내기 위해 토론하는 시간을 갖는다. 샘플로 들어온 타 회사의 TV를 함께 살펴보며 우리 제품과 비교해보거나 장단점을 분석하기도 하고, 때론 TV와 전혀 연관이 없을 것 같은 가전제품, 가령 로봇청소기라든가 에어컨 등도 살펴보는 편이다. 이는 다른 분야의 전자제품들을 뜯어보면서 TV에 적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얻기 위함이다.
개발실의 근무 분위기는 어떤 편인가? 삭막할 것 같다는 편견이 있기도 하다.
연구개발실에서 일하는 직장인을 떠올렸을 때 연상되는 몇 가지 모습이 있을 것이다. 그 첫 번째가 밀폐된 공간에 갇혀 정적인 일만 할 것이라는 편견인데, 이는 사실과 전혀 다르다. LG전자 개발실은 활기와 에너지가 넘치는 곳이다. 직원 스스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정하고 주체적으로 일을 진행하되 팀원들이 모여 함께 아이디어를 내고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때문에 조직 문화가 매우 끈끈하다. 특히 더 나은 부품을 개발하기 위해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고 해외 출장도 자주 가는데, 그러다 보니 나의 경우 아프리카 빼고는 거의 모든 나라를 다 가본 것 같다. 실제로 항공사 마일리지가 40만이 넘을 정도다. 연구개발실에 대한 두 번째 편견은 연구개발과 관련한 아이디어가 고갈되면 회사에서 오래 일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인데 이 역시 오해다. 사실 마케팅이나 기획 등 일반 사무직 분야는 트렌드가 워낙 빠르게 변하기 때문에 40대가 넘어가면 젊은 친구들의 감각을 따라가는 데 한계가 있다. 하지만 연구개발 분야는 연차가 쌓일수록 그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다. 실례로 LG전자에는 ‘Chief Engineer’라는 명칭이 있는데, 명장(名 匠)의 개념으로 이해하면 된다. 25~30년 경력을 가진 연구원들이 자신이 가진 노하우와 지식을 토대로 후배 엔지니어들에게 컨설팅 및 자문을 해주는 역할을 한다. 이처럼 연구원들은 자신이 가진 기술과 경험이 큰 재산이 될 수 있어 연차가 오래될수록 회사에서 인정받으며 안정적으로 근무할 수 있다.
능력 있는 개발자가 되기 위해 꼭 갖춰야 할 역량이 있다면 무엇인가?
엔지니어적인 감 또는 센스를 가지고 있다면 실무를 진행할 때 큰 도움이 된다. 개발이라는 것은 1+1=2라는 정해진 공식에 의해 결과가 나오는 작업이 아니기 때문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여러 경험과 지식을 종합적으로 활용했을 때 좋은 아이디어가 도출된다. 이런 엔지니어적 센스를 키우기 위해서는 전공 분야에 대한 공부가 필수지만 세상 돌아가는 것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평소 신문은 꼭 읽었으면 좋겠고 전공서적 외에 고전과 인문학 도서도 많이 읽기를 권한다. 막상 취업을 준비할 때는 책을 읽는 것이 무슨 큰 도움이 될까 싶기도 하겠지만 일을 하다 보면 인문학에서 영감을 얻거나 방향을 결정할 때 좋은 길잡이가 되어주는 것을 종종 경험한다. 그래서 나 또한 아무리 바빠도 신문은 꼭 읽으려고 하고, 1년에 10권 이상의 인문학 서적을 읽으려 노력하고 있다.
공대생들이 겪는 어려움 중 하나가 취업할 때 어떤 직무를 선택해야 할지 잘 모른다는 점이다. 자신에게 맞는 회사, 그리고 직무를 어떻게 선택하는 것이 좋겠는가?
취업과 관련한 정보나 진로 고민에 대한 조언은 학교 선배들 또는 주변 어른들을 통해 주로 얻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때 그들의 조언을 참고로 삼는 것은 좋지만 그것이 전부일 것이라는 선입견은 가지지 않았으면 한다. 세상은 학생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넓고 지금까지 본인이 경험한 것보다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이 더 많은데, 단편적으로 얻은 몇 가지 정보만으로 ‘그 직무는 이럴 것이다’는 식의 섣부른 선입견을 가지다 보면 선택할 폭이 좁아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 친구 중 한 명은 자동차 회사에 들어가서 엔진 개발을 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지만 지금은 자동차 내에 장착되는 가구 개발을 담당하고 있다. 처음에는 본인이 생각하던 일이 아니어서 실망 했을지는 몰라도 막상 그 일을 해보니 적성에도 맞고 보람을 많이 느꼈다고 한다. 그러니 취업을 준비할 때는 직무와 관련해서는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그 대신에 근무해보고 싶은 기업의 문화나 분위기를 고려해보면 좋을 것 같다.
LG전자 TV개발 연구소에 입사하려면 어느 정도의 스펙을 갖춰야 하나?
흔히 개발실에 입사하려면 석·박사 학위가 있어야 한다거나 자격증을 꼭 취득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이 많은데, 취업 시 그러한 조건들이 당락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지원 가능한 기본적인 학점과 영어점수 등을 갖췄다면 그 이상의 것을 얻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남들과는 다른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을 찾는 데 집중했으면 한다.실제로 LG전자 인사팀의 얘기를 들어보면, 자기소개서 상에 남들과는 다른 자신만의 가치, 경험, 능력을 적은 친구들에게 더 눈이 간다고 한다. 나 역시 함께 일할 후배를 뽑으라면 학교에서 스펙을 쌓기 위해 공부만한 친구들보다는 개성있고 다양한 사고를 할 줄 아는 친구를 뽑고 싶다. 최근에 상무님께서 신입사원 채용 시 사용할 면접 질문을 몇 개 만들어 달라고 하셔서 동료들과 함께 고민해 질문지를 작성한 적이 있다. 그중 하나가 ‘대통령과 대기업 회장 자리 중 어떤 것을 선택하겠는가?’였는데, 이는 지원자가 정답을 맞힐 수 있는가를 보기 위함이라기보다는 지원자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를 보려는 것이었다. 그러니 행여 면접관이 원하는 정답은 이것이겠지 하고 예측하고 답변하기보다는 가급적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LG전자 TV모듈러연구팀으로의 입사를 희망하는 후배들을 위한 조언을 부탁한다.
프레젠테이션 능력, 즉 발표력을 키웠으면 좋겠다. 함께 일하는 후배들 중에 참 똑똑하고 성실한 친구인데 의외로 발표력이 부족해 빛을 발하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회사는 여러 사람이 함께 모여 일하는 큰 조직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끼리 부딪칠 일도, 협업해야 할 일도 매우 많다. 이때 본인이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어도 이를 상대방에게 제대로 설명할 수 없으면 일의 진행이 더디고 실패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내가 현재 하고 있는 일, 내 머릿속에 있는 것 등을 상대방이 이해하기 쉽도록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연습을 평소에 해두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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