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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격자소서

합격자소서 상세

2013년 하반기 SK디스커버리

신입 현장관리자
  • 서울4년 학교
  • 자동차공학과 학과
  • 3.2/4.5학점
  • 805 토익
  • 2 개 자격증
  • 1 회 자원봉사

자소서 항목

  1. Q1 자신에게 주어졌던 일 중 가장 어려웠던 경험은 무엇이었습니까? 그 일을 하게 된 이유와 그때 느꼈던 감정, 진행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과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했던 행동과 생각, 결과에 대해 최대한 구체적으로 작성해 주십시오. (1000 자 10 단락 이내)
  2. Q2 이제까지 가장 강하게 소속감을 느꼈던 조직은 무엇이었으며, 그 조직의 발전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했던 것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은 무엇입니까? 개인적으로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일과 그 때 했던 행동과 생각, 결과에 대해 최대한 구체적으로 작성해 주십시오. (1000 자 10 단락 이내)
  3. Q3 자신에게 요구된 것보다 더 높은 목표를 스스로 세워 시도했던 경험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입니까? 목표 달성 과정에서 아쉬웠던 점이나 그 때 느꼈던 자신의 한계는 무엇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했던 행동과 생각, 결과에 대해 최대한 구체적으로 작성해 주십시오. (1000 자 10 단락 이내)
  4. Q4 기존과는 다른 방식을 시도하여 이전에 비해 조금이라도 개선했던 경험 중, 가장 효과적이었던 것은 무엇입니까? 그 방식을 시도했던 이유, 기존 방식과의 차이점, 진행 과정에서 했던 행동과 생각, 결과에 대해 최대한 구체적으로 작성해 주십시오. (1000 자 10 단락 이내)
  5. Q5 SK 입사 후 어떤 일을 하고 싶으며, 이를 위해 본인이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 왔는지 구체적으로 기술하십시오. (1000 자 10 단락 이내)

자소서 항목 질답

  • - Good teacher
    대학교 2학년 때 유체역학이라는 전공과목을 수강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 때 교수님께서 학생들의 적극적인 수업 참여를 위하여 직접 수업을 진행 하도록 했었습니다. 제가 맡은 파트의 역학이론은 다수를 상대로 이해시키기 상당히 번거로운 부분이었습니다.

    게다가 중학교 1,2학년 과외를 하다가 3개월 안에 모두 잘린 경험이 있던 저에게는 가르치는데 소질이 없다고 느꼈기 때문에 겁이 났습니다. 하지만 비싼 등록금을 내고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양질의 수업을 해야만 한다는 사명감이 생겼습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맡은 부분의 이론을 충분히 이해하기 위하여 공부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음으로 고민한 것은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이 내용을 효과적으로 학생들에게 전달할 것인가 였습니다. 그러다 문득 수업을 진행하는 것은 프레젠테이션과 크게 차이가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발표를 잘하는 친구에게 연락하여 조언을 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친구에게서 스티브 잡스의 프레젠테이션 영상을 참고하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스티브잡스의 프레젠테이션 영상을 시청한 후 발표를 해 나갈 대략적인 방향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 중요한 것은 말을 천천히 그리고 또박또박 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청중들이 집중할 수 있도록 적당히 이동하면서 제스처를 취하고 간간히 질문을 던지며 소통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프레젠테이션은 준비한 만큼 보여줄 수 있게 된다는 점이었습니다. 이런 점을 바탕으로 저는 실제로 수업하는 것처럼 룸메이트 앞에서 셀 수 없이 반복 연습하였습니다.

    그 결과 수업 당일 큰 어려움 없이 자신감 있게 발표하였고 교수님의 별다른 지적 없이 수업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이후의 프레젠테이션에도 자신감 있게 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제가 sk케미칼의 기계정비 업무를 하는 데 있어서도 할 수 있다는 의지를 가지고 열정적으로 문제해결을 하는데 임하겠습니다.

  • - 온몸을 던진 해외봉사
    저에게 있어서 처음이자 마지막의 해외경험이었던 해피무브라는 해외봉사활동을 다녀온 적이 있었습니다. 2학년 여름방학 초에 오리엔테이션을 하는 날 처음 팀원들과 모였고 앞으로의 일정을 위해 역할을 분담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 때 우리 팀이 중국 현지에 가서 해야 할 중요한 활동 중 하나가 공연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침 춤 동아리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던 제가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팀원들이 마땅한 의견을 내놓지 않자 저는 알고 있던 안무 중 하나인 박진영의 ‘그녀는 예뻤다’를 제시하며 보여주었습니다.

    팀원들은 뜨겁게 환호하였고 자연스럽게 저는 공연준비를 위한 안무팀장이 되었습니다. 좋아하는 분야로 팀 내에서 역할이 주어지고 나니 자연스럽게 저의 존재가 드러나게 되면서 강한 소속감을 느낄 수 있었고 열정적으로 활동에 임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출국하기 전에 빈 시간 동안 스스로 배울 수 있는 영상을 찍어서 팀 홈페이지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리고 출국하기 전날 한양대에 강의실을 빌려 모두 모아 놓고 연습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중국 현지에 가서는 엄청난 폭염 속에서 해비타트 봉사를 하게 되었는데 팀 사람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열심히 곡괭이 질과 삽질을 하였습니다.

    낮 동안의 일과가 끝나면 저녁시간에는 계속 공연연습을 하였습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열심히 준비하였던 공연을 보여줄 날이 왔습니다. 저를 선두로 한 무대는 한 치의 실수 없이 진행이 되었으며 중국 현지 주민들의 열렬한 환호 속에 공연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나머지 일정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온 우리 팀은 남은 방학 기간 동안 쉴 새 없이 모이기에 힘썼습니다. 그리고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각자의 일정이 있어서 얼굴들을 보기가 쉽지 않게 되었지만 방학시즌마다 모여 MT를 한 번씩 가면서 아직도 인연의 끈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SK케미칼도 맡겨진 역할 속에서 사명감을 느끼며 끝까지 함께 할 삶의 동반자가 되고 싶습니다.

  • - 16000 명의 함성을 듣다
    대학 4학년 때, 다니는 교회에서 6월 체육대회의 응원단장의 자리를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역량 이상의 무거운 직분을 제의 받아서 처음엔 굉장히 부담스러웠습니다. 하지만 팀을 대표하여 준비한 공연을 1만 6천명의 사람들 앞에서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대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없을 거라는 생각에 마음이 뜨거워져 마침내 부탁을 수락하였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응원단의 첫 모임에서 저는 평소에 많은 공연 경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저의 스타일로 공연 테마를 정하려고 했습니다. 그 때 팀에서 지난 응원단장의 역할을 여러 번 했던 형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본인이 그 동안 해 왔던 공연 테마를 관철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의견이 충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많은 고민 끝에 저는 실질적인 경험자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라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형의 의견과 제 의견을 종합하여 좋은 방향으로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또 준비과정에서 힘들었던 점은 단체의 장을 처음 맡다 보니 모든 일을 제가 다 하려고 하는 모습이 보였던 것입니다. 그런 저의 모습을 지켜보던 한 팀원이 각자 역할을 분담하면 더 책임감을 가지고 임할 것이라고 조언해 주었습니다. 저는 곧 안무팀, 간식팀, 보조 안무교사팀 등을 나누어 인원을 배치하였고 저의 부담도 덜고 훨씬 효율적으로 연습이 진행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렇게 진행을 해 나가던 중 팀원들이 각자 개인사정을 우선시하여 연습에 빠지는 경우가 빈번해졌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자발적으로 잘 참여할 수 있도록 개인적인 면담 시간을 가져서 참여할 수 있는 시간대를 조정하면서 팀을 이끌어 나갔습니다.

    팀원들의 협력과 노력으로 결국 우리는 체육대회 당일 잠실경기장에 모인 16000명의 사람들의 함성 속에 무사히 공연을 마치고 1등의 영광을 안았으며 100만원의 상금을 탔습니다. 그리고 이 응원단 팀과는 아직도 활발한 교류를 하며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 - 소심쟁이, 무대를 사랑하다
    저는 고교 시절 까지만 해도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두려워하는 소심한 아이였습니다. 이런 제가 변화를 시도해야겠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던 날은 논술전형이 한참 이뤄지던 2008년도 입시 수능의 해에 강사초청 논술강의를 듣던 날이었습니다. 제가 쓴 논술문을 가지고 앞에 나와서 발표를 하는 날이었는데 그날따라 유난히 긴장하여 매우 떠는 목소리로 발표를 마쳤습니다.

    그 때 논술강사에게서 농담조로 가족들 앞에서 발표연습이나 하라는 말을 들었고 강의실은 웃음바다가 되었습니다. 낙심한 저는 정말로 그 날부터 하교 후 집에 와서 가족들을 모아 앉혀 놓고 영어 지문을 읽으며 발표 연습을 하였고 그 외의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없던 자신감이 생겨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는 인터넷에서 우연히 팝핀현준 이라는 댄서의 춤추는 동영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패기 넘치는 얼굴로 무대를 장악하는 그가 너무도 부러웠습니다. 그래서 저도 그처럼 무대에서 자신감 넘치게 춤을 추고 싶었습니다.

    대학에 입학한 후 개강하는 날 저는 춤 동아리 방의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그 후 수 차례의 무대를 거쳤고 어느새 무대를 사랑하는 청년이 되었습니다.

    - 어제보다 오늘 더 사랑한다!
    무대경험이란 소수의 가족들 앞에서 `연습` 하는 것과 달리 다수의 대중 앞에 나를 적나라하게 던져놓고 보여주는 `실전` 그 자체였기에 자신감 회복에는 특효약이었습니다. 선천적인 단점을 극복하는 경험을 통해 저는 저 자신을 사랑할 줄 알게 되었고 매일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주어진 모든 상황에 대하여 열정적으로 임하는 자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조별발표과제가 있으면 개인 할당량을 포함한 발표자의 역할은 거의 항상 제가 맡을 정도였습니다. 또한 밝아진 성격으로 인해 주변에 긍정 에너지를 전파하여 주변에 힘든 일이 있어 저를 찾는 친구들에게 힘이 되어주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 - 준비된 엔지니어
    저는 SK 케미칼의 기계정비부서 업무를 희망합니다. 스무 살 때 저는 전주의 FAG 섀플러 코리아에서 4개월간 일하였습니다. 사방이 공작기계와 베어링들로 가득한 이곳에서 일을 하면서 간간히 생산 공정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유심히 지켜보았습니다. 그 덕에 기계에 익숙해지고 친숙해지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 때 나중에 직업을 구할 때가 되면 기계를 다루는 엔지니어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저는 입대를 하였고 기계의 집합체인 자동차의 내부를 다루어볼 수 있는 차량정비병을 자원하여 자대에 배치 받게 되었습니다. 사회에서 직접 기계를 다루어볼 수 있는 기회는 매우 드물었기 때문에 차량정비병으로서의 경험은 참으로 귀한 실습의 시간이었습니다. 군용차의 특성상 거친 운행을 감행하다 보니 수개월 내에 고장 나는 부위가 종종 생겼습니다.

    그래서 무엇보다 중요했던 것은 고장의 예방이었기 때문에 시기별로 정비계획을 세워 놓고 점검할 사항들을 체크하고 오래된 부품들은 교체하는 작업을 하였습니다. 그래도 가끔씩은 훈련이나 운행을 나갔을 때 생기는 갑작스런 고장이 있었는데 이때가 가장 난처했습니다.

    제가 상병쯤 되었을 때 훈련을 나가던 차량이 도로 한 가운데서 갑자기 멈춰버리는 위험한 상황이 생긴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에 필요한 정비도구 중에 연료를 받아낼 도구가 준비되지 않았었기 때문에 막막하기만 하였습니다.

    이 때 저는 순발력을 발휘하여 대체도구를 찾기 시작하였습니다. 마침 근처에 있던 폐 주유소 근방에 쌓인 쓰레기더미를 뒤져서 결국 대체도구를 찾아내었고 무사히 정비를 마친 후 운행을 계속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나니 제대 후에도 저의 생활반경 안에 있는 기계에 문제가 생기면 유심히 분석하고 고쳐보려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런 저의 경험이 SK케미칼에서 기계정비 업무를 하는 데 있어서 생산 공정을 무사히 진행시킬 수 있도록 기계의 고장을 예방하고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지원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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