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교사이신 어머니와 건실한 사업을 하시는 아버지 밑에서 큰 어려움 없이 자라왔습니다. 어머니께서는 깊게 관계를 맺은 친구들 몇 분 외에는 어울리지 않으셨는데 영향을 받아 저는 몇몇 친구만 깊게 사귀는 성격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성향 때문에 사람의 배경을 보아 본질을 보지 못하는 편견을 갖게 되었는데, 이는 남을 가려서 사귀는 성격으로 이어졌습니다. 또한, 외적으로 괜찮은 이미지 덕분에 사람들에게 호감을 얻었습니다.
이러한 성격과 경험 때문에 근거 없는 자만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배움의 소중함을 알아 항상 저에게 학업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어린 시절 철이 없었던 저는 노는 것을 좋아하여 아버지의 말씀을 잘 듣지 않았고, 대학에 입학한 후 깊은 후회를 하였습니다.
마음을 잡기 위해서 이른 시기인 20살에 입대를 하였습니다. 사회경험이 없고 어려움 없이 자라왔던 저는 엄격한 규율과 계획에 의해 움직이는 단체 생활을 하면서 사회성을 배웠습니다. 또한, 잘났다고 생각했던 제가 한없이 작고 평범한 존재였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과거에는 군인들은 애국심이 큰 사람이라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주적인 북한을 두었지만, 서로의 이익을 위해 다투는 간부들을 보고 현실은 다르다고 느꼈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배움의 필요성을 깨닫게 하였습니다. 군대에서의 생활은 사람의 배경은 볼 수 없고 모두가 같은 옷을 입고 온종일 같이 생활하여 그 사람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하였습니다. 이는 사람을 보는 시야를 넓게 만들었고 어머니의 영향을 받은 것들을 깨트렸습니다.
전역 후에는 높은 학력에 대한 갈증으로 약대 입학 준비를 했습니다. 시험 준비로 학교 공부에 신경을 쓰지 못하여 2학년 때 좋은 학점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깊은 성찰과 내면의 열정도 없이 단순히 높은 학벌에 대한 갈증으로 시작한 시험공부는 불합격으로 이어졌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실패는 제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학과 공부와 진로에 대해 원점에서 정말 치열하게 고민을 시작했습니다. 최종 목표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일단 학생 신분으로 할 수 있는 대외활동, 인턴 등의 일을 기회가 닿는 대로 시작했습니다. 이런 일들을 통해 ‘불확실성에서 뭔가를 도전하는 것’의 가치를 새삼 깨달았습니다. 잠시 방황했었지만, 뒤늦게라도 최선을 다해 전공과목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열심히 하다 보니, 전공과목에 전에 없던 대단한 흥미가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전공과목만으로 21학점을 꽉 채워 수강했는데도, 4.3/4.5의 높은 평점을 받게 되었습니다. 지도교수님은 제게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될 자질이 있다고 방학 동안 대학원에서 인턴을 권하셨습니다. 교수님의 권면은 저에게 가슴 뛰는 새로운 목표로 다가왔습니다.
OLED에 대해 더 깊이 배우기 위해 겨울방학 중 OOOOO에서 인턴을 하였습니다. 이런 저에게 잠재적 가능성을 지지해주고,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토양이 삼성에는 마련되어 있다고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