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리스트에 올라갈 뻔한 사연
제시된 단어 중 유독 눈에 띄는 두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공정과 재미입니다. 언뜻 봐서는 공통점을 찾을 수 없는 이 두 단어는 제가 유난히도 부족한 부분이어서 가장 추구하는 자질들입니다.
부끄럽지만, 저는 공정하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남들에겐 타협 없는 잣대를 들이대면서도 자기 자신에겐 관대한 사람처럼 말입니다.
2년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필리핀에선 한국에 나갈 때마다 공항세 외에 외국인 거주자에게만 징수되는 세금이 있습니다. 8만 원 상당의 높은 세금에, 유효기간 없이 출국할 때마다 징수되는 이유로 교민들의 불만대상이었고, 가끔 한 번씩 벌어지는 세관의 실수로 세금을 내지 않았다는 무용담이 전해지면 많은 부러움을 받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국에 나갈 일이 있어 공항 수속을 밟고 있었습니다. 수속을 관장하던 직원이 다음 창구에 가서 세금을 낸 후 게이트로 들어가라 하여 통과시켜주었는데 어디에 갔는지 세금 창구에 사람이 없었습니다.
자정이 넘은 시각이라 승객들도 거의 없어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었고, 돈도 넉넉지 않은 상태라 그냥 지나쳤습니다. 양심에 찔리긴 했지만 아무 문제도 발생하지 않았고 한국에서 시간을 보낸 후 별탈 없이 필리핀에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학생 비자를 연장하던 중 제 여권에 출국 도장이 찍히지 않은 걸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세관원이 통과를 시켜주었기에 당연히 도장이 찍혀있을 줄 알고 지나친 게 실수였습니다. 밀입국자라는 오해까지 받게 되며 이민국과 공항, 항공사까지 오가며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은 정말 힘들었습니다. 단 한 번의 실수로 그동안 힘겹게 이겨낸 유학생활이 이렇게 끝나게 된다는 생각에 그 날이 후회되었습니다.
다행히도 벌금으로 사건은 일단락되었지만, 그 이후로 남들이 보든 보지 않든 정직하고 올바르게 행동하는 것을 철칙으로 삼았습니다. 누군가의 잘못을 지적하기 전에 내가 먼저 그러한 자질을 가진 사람이 되기 위해 행동했고 사소한 절차도 가볍게 여기지 않고 공정하게 따르며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다른 한 가지 자질로 재미를 선택한 이유는, 재미의 힘이 참 대단하단 것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유쾌함은 사람들과의 첫 만남에서 닫힌 마음을 무장해제시키며, 따분한 모임을 흥미롭게 만드는 효과적인 수단입니다. 저는 화려한 언변이나 번뜩이는 재치로 사람을 웃기는 재주는 없습니다. 대신, 철저한 준비와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평범한 걸 재미있게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교회에서 성경 공부 강의를 맡은 적이 있었습니다. 새신자를 위한 강의라 딱딱한 성경 교리를 쉽고 흥미 있게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들의 이목도 끌 수 있는 친근한 방법을 고민하다, 하나님과 카카오톡을 한다면 흥미롭지 않을까란 생각을 했습니다. 새신자가 가질 만한 궁금증을 하나님과 카톡으로 주고받는 PPT를 제작해 새신자들이 흥미롭고 쉽게 이해했다는 평을 해주었습니다.
또한, 동아리 하숙집을 경영하며 점점 비싸지는 전기세와 수도세를 줄여야 하는 문제가 발생했는데, 스위치마다 붙인 절약 스티커론 효과가 없었습니다. 하숙비에 전기세와 수도세가 포함되어 있어 하숙생들이 절약의 필요성을 체감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재미있으면서도 자발적인 참여를 일으킬 방법은 없을까 고민하다, 게임 형식으로 다가가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당시 하숙집은 콘도 5개 층을 임대하여 운영하고 있었는데 각 층의 월별 전기세와 수도세를 모두에게 공개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음 달의 전기료와 수도세가 그 전 달에 비해 현저히 절약될 경우, 그 일부를 되돌려 주는 공약을 세웠습니다. 그러자 제가 말하지 않아도 서로 절약하자란 분위기가 형성되어 하숙집 운영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조직문화를 조성하고, 여러 교육을 담당하는 HR 업무에 재미를 첨가하여 임직원 모두가 즐겁고 자발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도록 하겠습니다. 특히 마이다스아이티의 핵심가치인 행복, 보람, 나눔의 활동을 즐겁게 이루는 문화를 만들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