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후에도 빛나던 아버지의 자세]
과거의 저는 중고등학교 성적은 중상위, 공부보다는 놀기를 좋아하던 착한 학생이었습니다. 인자하신 부모님 하에서 아무 걱정없이 학교를 다니며 살아왔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무렵, 아버지께서 근무하시던 한국투자증권과 동원증권이 합병을 하게 되었고, 그 후년에 결국 명예퇴직을 하시게 되었습니다. 퇴직을 하시고 약 2개월동안 집에 계신 아버지를 보면서 어린 나이였지만 집안의 재정이 흔들릴 수 있다는 공포감도 느꼈고, 아버지가 무능력하기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못된 생각도 했었습니다.
또 고등학교, 혹은 대학교 진학 후에 안정적인 공무원 시험을 준비할까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이후의 상황 속에서 아버지를 존경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퇴직 후 아버지께서 쉬신 2개월은 쉬는게 아닌 식당 장사를 위해 발품을 팔며 유동인구가 많은 위치를 찾는 것이었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항상 주무시고 계시던 아버지는 사실 낮에 집인 평택 근교부터 수원, 천안까지 가게 위치선정을 위해 쉼없이 일하셨으며, 그 결과 천안에서 요식업을 7년동안이나 이어올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노력에 더하여 1년에 추석, 설날 합쳐 4일만을 쉬며 가게를 열어오는 성실함을 보여주셨습니다. 이렇게 본인의 상황에 좌절하지 않고 가족에 대한 책임감을 보여주시며 좋은 결과를 이끌어 내셨다는 점은 꿈을 접고 안정적인 직장만을 갈구하던 제게 다시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실험실 근무를 통해 얻은 것들]
아버지께서 퇴직을 하시고 집안사정이 전보다 어려워지며 자연스레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습니다. 군대 전역 후에는 단순한 아르바이트를 벗어나 교내 기초과학과에서 실험실 조교로서 근로하였습니다. 실험실에서는 유기발광다이오드의 소자를 합성하는 실험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일련의 교육을 받은 후, 교수님께서 전임조교가 작성하던 실험노트를 주시며 이리듐 클로라이드에 리간드를 합성하여 다른 소자와 발광을 비교하는 실험을 진행하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실험노트에는 합성재료와 방법만이 설명되있고, 합성시 온도, 합성시간이 정확하게 적혀있지 않았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시약의 가격이 고가이기에 매 실험마다 보고하고 수정사항 지시를 받도록 하셨습니다.
겨울방학이 시작하기 전까지도 실험에 차질이 생기고,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직접 다양한 온도 및 시간을 정하고, 시약의 배율을 조정하고 간트차트를 만들어 교수님께 제출하여 승인을 받았습니다. 한번의 합성 후 결과물이 나오는데까지 3일이 걸리는 실험이기에 수십번의 실험으로 겨울방학 기간을 거의 소모하였지만 결국 가장 적합한 온도 및 시간을 찾아내어 실험노트를 업데이트하고, 교수님의 인정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최적의 합성조건을 찾기 위해 실험 계획을 세우고, 교수님의 승인을 받고, 비록 오래 걸렸지만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던 이 경험은 정확한 목표의식과 이를 위한 올바른 계획수립, 그리고 끈기있게 진행하는 것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